혼자서 채널 열한 개를 굴리는 법 — AI에게 맡기기 전에 정한 것들
요즘 제가 관리하는 채널은 열한 개입니다. 커뮤니티 카페 하나, 스레드 계정 둘, 블로그 셋, 회사 홈페이지, 그리고 보험 상담 사이트 네 곳. 이 중 블로그는 셋 중 둘, 스레드는 둘 다 직접 글까지 씁니다.
이걸 혼자 한다고 하면 다들 언제 다 하느냐고 묻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저는 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었고, 반복되는 일은 AI에게 맡겼습니다.
AI에게 일을 맡기는 건 도구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일의 구조를 짜는 일이었습니다.
1. 기획 — 무엇이 막혀 있었나
처음 막힌 곳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일관성이었습니다. 여유가 있는 날은 몇 편씩 쓰고, 바쁜 날은 한 편도 못 썼습니다. 쓸 때마다 기준이 달라서, 어제 쓴 글과 오늘 쓴 글이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AI를 써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그때 "글 하나 써 줘"라고 부탁하면 글은 금방 나왔지만, 매번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고 결과도 매번 달랐습니다. 문제는 쓰는 손이 아니라, 기준과 기억이 남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습니다. "AI가 무엇을 써 줄 수 있나"가 아니라, "매일 같은 품질로 돌아가려면 무엇이 정해져 있어야 하나."
2. 설계 — 맡길 것과 남길 것을 나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을 쪼개는 것이었습니다. 주제를 정하고, 초안을 쓰고, 검수하고, 올리고, 반응을 살피고, 기록하는 일. 이 중에서 반복되는 일은 AI에게, 판단이 필요한 일은 제게 남겼습니다.
- AI에게 맡긴 것 — 초안 쓰기, 정해진 형식에 맞추기, 올리기, 링크 정리, 작업 기록 남기기
- 제가 쥔 것 — 무엇을 쓸지 방향, 표현의 선, 그리고 올릴지 말지의 최종 승인
그리고 기준을 사람 머릿속이 아니라 파일에 적었습니다. 채널마다 운영 원칙을 담은 파일과 진행 상황을 적는 파일을 하나씩 두고,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AI가 그 파일부터 읽게 했습니다. 몇 가지 원칙은 이렇습니다.
- 블로그는 하루 한 편만 올립니다. 대신 초안은 항상 세 편을 미리 준비해 둡니다.
- 모든 글은 제가 확인한 뒤에만 올라갑니다. 승인이 내용 검수를 대신하지 않도록, 실제 화면으로 미리 봅니다.
- 금액이나 성과를 단정하는 표현, 상품 정보, 다른 회사와의 비교는 쓰지 않습니다.
- SNS 글은 한꺼번에 올리지 않고, 사이사이 간격을 둡니다. 하루 라인업도 주제를 섞어서 짭니다.
좋은 설계는 기억에 기대지 않습니다. 오늘 처음 일을 맡은 사람도 파일만 읽으면 어제와 같은 기준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AI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 제작 — 원칙을 실제 흐름으로 만든다
원칙이 정해지자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 글은 AI가 초안을 쓰면 블로그 편집기에 임시저장까지 해 둡니다. 저는 실제로 보일 화면을 미리보기로 확인하고, 고칠 곳을 말하거나 "게시해"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시간을 정해 두면 예약 발행도 되고, 올라간 글은 구글에 색인 요청까지 이어집니다.
새 글이 올라가면 관련 있는 예전 글 끝에 새 글 링크를 붙입니다. 글 하나가 섬처럼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를 이어 주도록요. SNS는 초안을 제목과 함께 보여 주면 제가 고르고, 승인한 글만 간격을 두고 올라갑니다.
제작은 설계를 '매일 같은 순서로 반복되는 길'로 바꾸는 일입니다. 길이 정해져 있으니, 바쁜 날에도 확인과 승인만 하면 일이 멈추지 않습니다.
4. 운영 — 사고가 규칙이 된다
물론 처음부터 매끄럽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글 첫 문단에 넣은 굵은 글씨 하나 때문에 블로그 첫 화면의 글 목록이 통째로 깨졌습니다. 원인을 찾아 테마를 고치고, "첫 두 문단에는 꾸밈 태그를 쓰지 않는다"는 규칙을 원칙 파일에 추가했습니다.
제 확인 없이 글이 먼저 올라간 날도 있었습니다. 그 뒤로 "임시저장 → 미리보기 → 승인 → 게시"가 절차로 굳었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단어가 글에 섞여 들어간 날은, 그 단어를 금지 목록에 올렸습니다.
이렇게 사고가 하나 날 때마다 규칙이 하나씩 늘었습니다. 같은 실수가 두 번 일어나지 않는 건 AI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실수가 기록으로 남고 다음 작업이 그 기록부터 읽기 때문입니다. 운영은 끝이 아니라 다음 설계의 재료입니다.
AI는 손이 빠른 신입입니다
돌아보면 AI를 대하는 방식은 새로 온 동료와 일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을 쪼개 주고, 기준을 적어 주고, 결과를 확인하고, 실수는 다음 기준으로 바꿉니다. 손은 누구보다 빠르지만, 방향과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그래서 저는 AI를 쓰기 전에 늘 같은 질문을 먼저 던집니다. "무엇을 시킬까"가 아니라, "이 일은 어떤 구조로 돌아가야 하는가." 수자원 시스템을 다루던 때도, 제안제도를 다시 돌리던 때도, 지금 콘텐츠를 운영할 때도 질문은 같습니다. 일하는 방식에 대한 더 긴 이야기는 일이 막히면, 저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봅니다에 적어 두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은 구조에 맡기고, 판단은 사람이 쥡니다. 도구가 바뀌어도 이 원칙은 바뀌지 않습니다.